각본 우로부치, 감독 미즈시마, 캐릭터까지 3D 모델링으로 표현하고 주역이 쿠기밍.

이런저런 사전 정보가 자주 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딱히 관심이 가진 않아서 챙겨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PV나 스토리 시놉시스 같은것도 전혀 안보는 등 사전정보 같은것도 위에서 언급한 스탭진 말고는 전혀 몰랐고.

그런데 모 후배 한명이 재밌다고 꼭 보라고 추천을 해줬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이런걸 안보고 지나칠뻔 했으니.


'90년대말 ~ 2000년대 초에 나올법한 작품'이라는게 첫 인상이었다. 풀3D(사실 배경은 다 2D였지만 중요한 인물이 3D니) 그래픽에, 그에 상응하는듯이 사이버 스페이스의 배경. 꼭 20세기 말에 '21세기 사이버 시대' 운운하면서 나올법한, 3D 기술력을 과시하지만 정작 그래픽도 별로고 실속(스토리)도 별로인 그런 작품을 접하는 느낌이었다. 다 보고 난 뒤에 말하자면, 전혀 반대의(그래픽도 좋고 스토리도 좋고) 작품이었지만.


중반부 까지의 인상은 '쿠기밍&미키신 만담물'이었다. 어쩐지 주변에 성덕들이 이걸 좋아라 하더라- 라는 생각도 했고. (말을 하는) 등장인물이 적고, 동적인 화면이 적다 보니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확실히 귀가 즐겁긴 했다. 능글능글한 미키 신이치로와, 기가 센 쿠기미야 리에. 중반부 넘어가서는 여기에 카미야 히로시까지 추가가 되고. 


중반부를 넘어가고 나서 슬슬 이 작품의 주요 소재가 다 드러난다. 지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구 인류. 디바에서 전뇌화 되어 살아가는 신 인류. 몇백년에 걸쳐 스스로 '지성'과 '인격'을 확립한 AI. 이 셋을 서로 대조시킴과 동시에 서로 어울리는걸 그리는게 참 인상적이었고 흥미로웠다. 


스토리 전개 면에서도 플레이타임이 짧은 탓인지 쓸데없이 이야기 복잡하게 꼬거나 골치아픈 갈등 요소 없이 시원시원하게 진행되는게 참 맘에 들었다. 특히 안젤라가 단순이 입으로 츤츤(?)거리기만 할 뿐이지, 정말로 고집불통이 아니라는게 정말 다행이고, 또 맘에 들었다.


사실 인물의 3D 그래픽은 고퀄리티이긴 하지만 여전히 어색한 티가 난다. 움직임이 지나치게 부드러워서 무게감이 안느껴 진다거나, 구도에 맞게 적절히 변형/과장을 하는 2D 그림을 보는게 익숙해지다 보니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3D 모델링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거나.


하지만 첫번째로, 개성있는 성우들의 열연과 흥미로운 소재들의 등장을 통한 작품 몰입으로 인해 그런 어색함을 느낄 겨를이 거의 없었다. 열심히 보다가 '아 그러고보니 이거 인물도 3D 였지 참'하고 자각을 하면 그제서야 어색함이 잠시 보이는 수준.


그리고 두번째로. 저 '잘 보면 어색해 보이는 인물의 3D 그래픽'이, 메카닉 액션신으로 되버리니 역으로 당대 최강의 3D 그래픽이 되버렸다. 그야말로 돈 한가득 쏟아부은 극장판에서만 볼수 있는, TVA같은데서는 전혀 보일수 없는 전투신! 메카닉 전투신의 3D 그래픽은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 있기에, 오히려 이 작품의 전투신은 이게 잘 만든 2D인지 3D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이런 훌륭한 그래픽에 더불어, 다이나믹한 카메라 워킹과 구도, 화려한 연출과 그에 걸맞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띄워주는 BGM까지. 사실 위에서 말한 소재니 성우니 이런게 없었다고 해도 후반부의 전투신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스스로의 독자적인 판단 아래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AI, 라는 소재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이래로 유구한 SF의 전통이자 클리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들어 이와 반대로 오히려 인간보다 더욱 '인간 다운' AI가 등장하는 작품이 많이 보이는것 같다. 이 작품도 그렇고, 얼마전에 본 인터스텔라도 그렇고. 취성의 가르간티아도 그렇고. 아. 가르간티아는 폭주하는 AI도 동시에 등장하긴 했구나. 뭐 아무튼.


스탭롤 다 끝나가는 와중에 꼭 후속작을 암시하는듯한 떡밥이 하나 투척되는데... 글쎄. 괜히 후속작 내보내서 이야기 꼬아대지 말고 그냥 단편으로 깔끔하게 끝냈으면 좋겠다.


아직도 가슴 속의 고양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위에 쓴 글들을 봐도 뭔가 제대로 감상/감정/생각을 정리했다는 느낌이 안된다.

거의 의무감에 덕질(=애니 및 라노베 감상 등)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간간히 튀어 나오는 이런 작품을 때문에 덕질을 끊지를 못하겠다.